2025년, 교토의 시니어들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전통을 실천하고 재해석한다. 교토의 아침부터 석양까지, 다섯 명의 어르신을 따라가며 일상 속 기술로 살아 숨 쉬는 ‘삶의 지혜’를 만나보자. 시니어 하루를 뒤따라 간다.
시간을 잇는 도시, 교토에서 노년을 다시 정의하다
2025년 현재, 교토시 인구의 32.1%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는 일본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며, ‘장수마을’로 불릴 만큼 고령화가 뚜렷하다. 하지만 놀라운 건 숫자가 아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들을 ‘은퇴자’, ‘노인’이라는 말로 단순히 분류해왔지만, 교토의 어르신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다. 이들은 전통을 그저 ‘보존’하는 세대가 아니라, ‘삶의 기술’로써 매일같이 전통을 재해석하며 살아간다. 이 글은 그런 노년의 하루를 따라가며, 전통과 기술, 기억과 미래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살펴본다.
청묘사에서 울리는 하루의 시작, 새벽 5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청묘사에 울려 퍼지는 염불 소리. 70대 스님 오카다 류운 씨는 50년째 같은 자리에서 경전을 읽고 있다. 그에게 매일의 예불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오늘도 새롭게 살아간다는 의지”다.
그의 옆에는 명상 체험을 위해 찾아온 60대 일반 참배객들이 있다. 이곳은 전통 사찰이지만, 최근 들어 현대 명상법과의 접목을 시도하며 젊은 층은 물론, 은퇴 후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는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청묘사의 모래 정원이 단지 미적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곳은 모래의 질감과 높낮이가 노인들의 보행 안정감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설계되었고, 이를 통해 단순히 걷는 것조차 명상이 되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니시키 시장에서 만난 세대 공존의 식탁
아침 9시, 니시키 시장. 전통과 활기가 살아 숨 쉬는 이곳에서, 우리는 80대 유바 장인인 스즈키 할머니를 만났다. “기계가 만든 건 맛이 단조로워요. 손맛은 이야기죠”라며, 유바 한 장 한 장을 접는 그녀의 손끝은 60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젊은 셰프와의 협업 프로젝트가 활발하다는 점이다. 할머니가 만든 유바를 기반으로 한 ‘교토 전통 간편식’은 이제 관광객은 물론 지역 젊은이들의 간식이 되었다.
2024년 교토시 자료에 따르면, 전통시장 이용 노인 중 68%가 모바일 결제를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들고 캐시리스 결제를 마친 뒤, 유바를 포장하는 모습은 ‘디지털 격차’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전통은 낡지 않았다. 새롭게 살고 있다.
정오의 공방, 기모노에서 시작된 기술 혁신
점심 무렵, 교토 외곽의 한 기모노 공방. 여기서는 55년 경력의 노장인 나카무라 씨가 디지털 패턴 제작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기계는 빠르고 정교하지만, 손바느질의 마음은 못 따라오죠. 그래서 저는 둘 다 씁니다.”
그의 공방에서는 해외 주문 관리 시스템에 AI 번역기를 도입해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 바이어들과도 매끄러운 소통이 가능하다. 흥미롭게도, 이런 혁신을 이끈 건 그의 손자였다. 전통의 계승은 때로 혈연을 넘어서는 협업에서 피어난다.
일본 전통공예품의 수출액은 최근 10년간 무려 320% 증가했다. 그 중심에는 나카무라 씨와 같은 ‘기술에 열린 장인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토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수출하고 있다.
석양 아래, 철도 박물관의 시간 여행자
오후 4시, JR 교토역 근처 철도 박물관. 이곳의 인기 체험인 **증기기관차 시뮬레이터를 운영하는 이는 은퇴 기관사 이와타 씨(78세)**다. “철도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미래를 향하는 길이에요.”
그는 지금 VR을 활용해 1960년대 교토 시가지를 재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교토의 철도사를 디지털 아카이빙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이 시도는, 단순한 박물관 운영을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 계승을 뜻한다.
이와타 씨는 또한 교토 지혜학교라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매주 월요일, 은퇴자를 대상으로 철도 역사 강의를 진행하며, ‘지식’이 아닌 ‘기억’을 나누고 있다.
전통은 빠르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다
교토는 단지 전통을 보존하는 도시가 아니다. 그것은 빠르진 않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도시다. 기요미즈데라의 유니버설 디자인 경사로처럼, 전통 공간조차 모두를 위한 방향으로 개조되고 있다.
실버 세대를 위한 ‘모노즈쿠리 100세 프로젝트’는 장인을 넘어 크리에이터로서의 노년을 가능케 한다. 이곳에서 만든 작품은 전시회를 넘어 NFT로도 제작되며, 디지털 전통의 서막을 연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전통과 함께하셨나요?
당신이 마시는 차 한 잔, 들고 있는 가방, 걷는 거리 속에도 전통은 스며 있습니다. 교토의 어르신들은 전통을 다시 쓰고 있습니다. 낡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혜로.
이제는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시간입니다.
“당신의 일상에 스며든 전통은 무엇인가요?”